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서명: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저자: 투퀴디데스
역자: 천병희
출판사: 도서출판 숲 (2011) 페이지: 808

페르시아전쟁이 끝난 후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스파르타나 아테네 어느 한쪽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저마다 이러한 관계가 필요한 합당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 사이의 경쟁과 견제 속에서 그리스의 국제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델로스 동맹이 점점 성장해 아테네가 성공적으로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점차 제국적인 야심을 드러내면서 두 도시 사이에는 대립이 싹트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짧은 기간에 믿기 어려울 만한 번영을 일구며 46년이 흐른 기원전 431년, 이제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두고 델로스 동맹의 맹주인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의 맹주인 스파르타가 맞붙은 내전이 발발하는데 이것이 펠로폰네소스전쟁이다. 27년간 지속된 이 전쟁으로 그토록 비범했던 그리스의 황금기는 속절없이 저물어갔다.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는 사실상 몰락하고, 승리한 스파르타도 힘을 다하면서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놀라운 시대를 끝장내버렸다. 전쟁 중에도 유지되던 규칙과 관행마저 짓밟은 대담함과 잔혹성으로 문명의 토대들을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그 찬란한 세계를 붕괴시켜버리고 말았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은 그렇게 끝났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인류는 다시 이 책에 주목하고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세기를 지나면서 더욱 무서운 기세로 치닫는 서로 다른 세력간의 분쟁과 전쟁들이 펠로폰네소스전쟁과 닮은꼴을 하고 있으며 이 책이 인간사에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특별한 비극을 압시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투퀴디데스(BC 460~400년경)는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이 전쟁의 원인·전개 과정·결과를 시기별로 기록하며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남겼다. 일치단결한 힘으로 강력한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쳤던 단합의 역사를 가진 그리스 세계에서 벌어진 내전을 두고 기록해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상류계급 출신으로 페리클레스 시기의 가장 화려한 아테네를 체험했으며, 자신이 묘사하게 될 전쟁에 장군으로 참여했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이 전쟁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데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사책의 한계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이 2500년 전에 끝난 전쟁을 기록한 유일한 책이며, 그가 아테네의 장군이었음을 감안하고도 이 끔찍한 전쟁의 기록이 갖는 가치와 평가를 폭넓은 시선으로 따져봐야 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원전 424년 한 마을을 방어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장군직에서 해임되고 추방되었다. 사면되기까지 2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 그는 스파르타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사실(事實)을 수집하고 확인했는데 이런 자료가 이 책의 집필에 밑바탕이 되었다.

“나는 주워들은 대로 또는 내 의견에 따라 기술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든 남에게 들은 것이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기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이 참가한 전쟁임에도 객관적인 제3자의 눈으로 서술했다. 함축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가장 심오한 역사가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자신의 말마따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 특별한 비극의 기록을 통해 지혜와 교훈을 찾았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머콜리는 투퀴디데스를 “지금껏 나타난 역사가 중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평가한다. 19세기 독일에서 투퀴디데스는 랑케 등에 의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가의 이상으로 추앙받았다. 일관되게 근엄함을 유지하고 귀족적인 자세로 감정을 배제하고 있어, 투퀴디데스의 역사는 진지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기원전 400년 무렵 그가 암살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펠로폰네소스전쟁사』는 미완성으로(기원전 411년에 중단), 이 전쟁이 404년에 끝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거의 당대에 진행 중인 전쟁을 담았다. 당시의 아테나이는 가장 희망적인 문명 국가였고 이후 인류는 그처럼 높은 지적 성취에 이른 적이 없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점에서 그는 대단히 비극적인 주제를 다룬 셈인데, 장대한 비극을 위해 그는 자신이 가진 제한적이지만 엄청난 재능을 쏟았다. “내가 기술한 역사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20년 선배였던 헤로도토스를 의식한 발언에서 그는 명확한 선을 긋고 있다. 객관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내용은 기록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헤로도토스의 저술이 넓다면, 투퀴디데스의 저술은 깊다. 헤로도토스가 신의 섭리를 믿는다면, 투퀴디데스는 모든 것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설명하며 신의 개입을 배제한다. 일화를 소개할 때 헤로도토스는 이설도 함께 소개하지만, 투퀴디데스는 거의 언제나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만 선택해 소개하며 독자들이 그것을 믿어주기를 바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매력적이고 재미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반면에 투퀴디데스가 다루는 내용은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는 부류에 속하며 읽기가 까다롭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되풀이하여 읽을수록 진국이 나오는 작가이다. 소크라테스가 윤리를 학문으로 만들고자 했다면 투퀴디데스는 역사를 정밀과학 또는 그에 근접한 학문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것만으로도 당시에는 엄청난 일, 어쩌면 지나치게 야심찬 계획이었을 수 있다. 역사에 남을 사건을 역사가다운 시선을 장착하고 기록한 첫번째 역사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역사적 인물들에게 배정한 40개의 연설문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것은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추도사(2권)이다. 되풀이하여 읽을수록 진국을 맛볼 수 있는 대목 하나는 다음과 같다.

“아테나이가 싸우는 이유는 누구 하나를 제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배력을 잃게 되면 억눌렸던 적들이 나타납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편안히 물러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의 책에는 ‘제국주의적 민주주의’의 실체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사』로 고전번역가 천병희 교수는 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원전만 읽어서는 의미가 알쏭달쏭한 투퀴디데스의 문장”을 영역본과 독역본 5, 6종을 참고해가며 정확하고 읽기 쉽게 번역해낸 공을 인정한 결과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 페르시아 전쟁에 관해서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참고. 아울러 펠로폰네소스 이후 관련 역사서는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참고)

목차

옮긴이 서문 아주 특별한 비극,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일러두기


1~23장
서론. 초기 헬라스의 상황. 이 책의 주제, 방법, 목표
24~65장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 아테나이와 코린토스의 충돌
66~88장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이 라케다이몬에서 회동하다; 모두 아테나이의 공격을 비난하며 전쟁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다
89~117장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나이의 국력 신장
118~125장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이 라케다이몬에서 재차 회동하다; 전쟁 준비
126~146장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가 서로 불만을 토로하다; 퀼론, 파우사니아스, 테미스토클레스 이야기. 라케다이몬의 최후통첩을 아테나이가 거부하다


1~9장
테바이의 플라타이아이 공격과 전쟁의 시작(기원전 431년); 헬라스인들은 대부분 라케다이몬에 동정적이다
10~33장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앗티케 지방에 침입하자 아테나이인들이 다른 곳에서 대규모 반격을 가하다
34~46장
아테나이인 전몰자들을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사
47~70장
전쟁 2년차가 시작되다. 아테나이의 역병. 페리클레스와 그의 정책에 대한 개관. 전쟁 2년차가 끝나다
71~94장
플라타이아이가 펠로폰네소스인들과 보이오티아인들에게 포위 공격당하다. 코린토스 만 해전에서 아테나이인들이 승리하다
95~102장
아테나이의 트라케 동맹군이 마케도니아에 침입하다. 전쟁 3년차가 끝나다


1~35장
레스보스가 뮈틸레네의 주도 아래 아테나이에 반기를 들다. 포위 공격당하던 플라타이아이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탈출하다. 전쟁 4년차가 끝나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이 뮈틸레네인들을 지원하려다 실패하다. 뮈틸레네의 항복
36~50장
뮈틸레네인들의 처벌을 두고 클레온과 디오도토스가 아테나이에서 논쟁을 벌이다; 아테나이인들이 뮈틸레네 주민들을 대부분 살려주기로 결의하다
51~68장
플라타이아이의 항복; 플라타이아이인들이 재판받고 처형되다.
69~90장
케르퀴라 섬의 내전. 정치 변혁에 대한 심리 분석. 시켈리아에서의 아테나이인들의 활동. 전쟁 5년차가 끝나다
91~104장
데모스테네스 휘하의 아테나이군이 아이톨리아 지방에서 패하다. 아테나이인들이 델로스 섬을 정화(淨化)하다
105~116장
데모스테네스 휘하의 아테나이군이 암프라키아에서 승리하다. 전쟁 6년차가 끝나다


1~51장
아테나이인들이 퓔로스에서 승리하다. 라케다이몬인들이 평화조약과 동맹조약을 맺자고 제의하지만 거절당하다. 라케다이몬 군사들이 항복하고 아테나이로 끌려가서 구금되다. 케르퀴라의 과두정파가 학살되고 내전이 끝나다. 전쟁 7년차가 끝나다
52~74장
아테나이인들이 라케다이몬에 몇 차례 성공을 거두다. 시켈리아의 헬라스인 이주민들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되다. 메가라의 내전이 아테나이인들의 실패로 끝나다. 메가라에 항구적인 과두정부가 들어서다
75~116장
브라시다스 휘하의 라케다이몬군이 트라케 지방으로 원정길에 오르다; 그곳에 있는 몇몇 동맹국이 아테나이에 반기를 들다. 아테나이군이 델리온에서 보이오티아군에게 패하다. 브라시다스가 암피폴리스를 함락하다. 전쟁 8년차가 끝나다
117~135장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의 휴전협정. 트라케 지방의 헬라스인들이 계속 아테나이 동맹을 이탈하다. 전쟁 9년차가 끝나다


1~12장
아테나이인들이 암피폴리스를 탈환하려다 실패하다; 브라시다스와 클레온이 전사하다
13~39장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의 50년간 평화조약과 동맹조약. 전쟁 10년차가 끝나다. 불만을 품은 일부 라케다이몬의 동맹국들이 음모를 꾸미다. 전쟁 11년차가 끝나다
40~83장
아테나이와 아르고스와 일부 펠로폰네소스 국가들이 동맹을 체결하다. 전쟁 12년차가 끝나다. 아테나이의 지원을 받는 아르고스와 에피다우로스의 전쟁. 전쟁 13년차가 끝나다. 아테나이군과 아르고스군과 그들의 동맹군들이 만티네이아에서 라케다이몬군에게 패하다;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의 50년간 평화조약과 동맹조약. 전쟁 14년차가 끝나다. 아르고스가 다시 라케다이몬 쪽에서 아테나이 쪽으로 기울다. 전쟁 15년차가 끝나다
84~116장
아테나이의 멜로스 섬 원정. 아테나이 대표단과 멜로스 대표단의 대화. 멜로스의 저항. 멜로스의 항복. 멜로스 주민들이 처형되거나 노예가 되다


1~7장
아테나이가 시켈리아 침공 계획을 세우다. 시켈리아 주민들에 관한 개관. 전쟁 16년차가 끝나다
8~32장
아테나이가 시켈리아 원정에 착수하다. 니키아스와 알키비아데스가 장군으로 임명되다. 니키아스가 공개적으로 원정에 반대하다. 알키비아데스가 신성모독죄로 고발당하다
33~61장
아테나이 원정대가 출발했다는 보고를 접한 쉬라쿠사이인들 사이에 그 개연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다. 아테나이인들이 시켈리아에 도착하여 현지 지원을 받고 군자금을 구하려고 노력하다. 본국에서 소환하자 알키비아데스가 도주하고 망명하다
62~88장
쉬라쿠사이군이 아테나이군에 패하다. 헤르모크라테스가 쉬라쿠사이의 방어체계를 재정비하다. 카마리나 시에서 헤르모크라테스와 아테나이 사절 에우페모스가 서로 우군이 되어달라며 논쟁을 벌이다; 카마리나인들은 중립 노선을 택한다
89~105장
알키비아데스가 라케다이몬으로 망명해, 시켈리아와 앗티케에서 동시에 아테나이를 공격하도록 라케다이몬인들을 설득하다. 전쟁 17년차가 끝나다. 아테나이군이 쉬라쿠사이군에게 이기고 도시를 포위하기 시작하다. 귈립포스 휘하의 펠로폰네소스 구원병들이 도착하다


1~30장
쉬라쿠사이인들이 다시 전쟁 준비에 전념하다. 니키아스가 아테나이에 증원부대를 파견해주든지 아니면 군대를 철수시켜달라는 내용의 서찰을 보내다. 그의 요청에 따라 아테나이인들이 증원부대를 파견하다. 전쟁 18년차가 끝나다. 라케다이몬군이 앗티케에 침입하다. 라케다이몬인들이 데켈레이아를 요새화하다. 아테나이를 지원하러 왔다가 귀국하던 트라케인들이 도중에 뮈칼렛소스 마을을 약탈하다
31~49장
아테나이 해군이 쉬라쿠사이 항에서 쉬라쿠사이인들과 그들의 동맹군들에게 패하다. 데모스테네스 휘하의 아테나이 증원부대가 도착하다. 아테나이군이 쉬라쿠사이 요새를 함락하려고 야습을 감행했으나 함락 직전에 참패하다.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나이로 철군하자고 주장했지만 니키아스가 이를 뒤로 미루다
50~71장
아테나이군이 바닷길로 탈출하려고 절망적인 시도를 해보지만 쉬라쿠사이군이 그들을 결연히 저지하다. 쉬라쿠사이군이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다
72~87장
아테나이군이 육로로 철수하며 계속 적군에게 공격당하다. 수많은 군사들이 도륙된 뒤 아테나이군이 항복하다. 데모스테네스와 니키아스가 죽임을 당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채석장에 감금되다


1~6장
아테나이인들이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의하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이 곧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다. 이오니아 지방 도시들이 아테나이에 반기를 들려 하다. 펠로폰네소스군에게 페르시아 왕이 군대 유지비의 일부를 대주겠다고 제의하다. 전쟁 19년차가 끝나다
7~18장
전투 재개; 라케다이몬인들이 해전에서 패하자 사기가 꺾이다. 알키비아데스의 공작으로 키오스가 아테나이 동맹을 이탈하고 밀레토스와 다른 도시들이 그 뒤를 따르다. 페르시아 왕과 그의 태수 팃사페르네스와 라케다이몬인들과 그들의 동맹국들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다.
19~44장
주로 이오니아 지방에서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지만 승패가 가려지지 않다. 라케다이몬인들과 그들의 동맹군이 전에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영토의 일부를 양보하는 대가로 페르시아 쪽에서 그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하다. 라케다이몬과 페르시아 간의 협정이 수정되다
45~60장
라케다이몬과 알키비아데스 사이의 불화. 팃사페르네스에게 망명한 알키비아데스가 어느 한쪽 편만 들지 말고 헬라스 양대 세력의 군세가 호각을 이루어 서로 지치게 만들도록 하라고 페르시아인들에게 조언하다. 아테나이군 내의 과두제 지지 세력이 알키비아데스의 주선으로 페르시아의 보조금을 타내려고 음모를 꾸미다. 아테나이 민중이 마지못해 동의하다. 전쟁 20년차가 끝나다
61~88장
아테나이의 민주정부가 편협하고 과격한 과두정부로 대치되다. 아테나이 병사들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여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펠로폰네소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다
89~109장
아테나이 과두정부의 붕괴. 라케다이몬인들의 해군이 에우보이아 섬 서쪽 에리포스 해협의 해전에서 승리했으나, 모험정신의 결여로 아테나이에 결정타를 가하지 못하다. 아테나이가 헬레스폰토스 해협 퀴노스세마 곶 앞바다의 해전에서 모처럼 크게 이기다

참고문헌
도량형 환산표
연설 찾아보기
찾아보기
지도

책 구입하기: 교보문고알라딘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