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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몫은, 의욕 있는 독자라면 누구든 그 세계에 빠져들어 마지막 책장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원전에 어긋나지 않게 번역하는 일이다.

나의 몫은, 의욕 있는 독자라면 누구든 그 세계에 빠져들어 마지막 책장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원전에 어긋나지 않게 번역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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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가 이 땅에 보낸 천병희,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다 (1939~2022)

천병희 선생은 1939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어독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초년 시절부터 그리스어를 공부하였으며, 2학년 1학기에 장익봉 교수와 함께 『향연』 을 원전으로 읽으면서, 그때부터 플라톤 책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학부 시절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등을 원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며 고전 문헌 독해의 기틀을 잡았다.

대학 졸업 후 1961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독문학과 그리스어, 라틴어를 공부하며 고전 문학 연구의 기초를 다졌으며, 북바덴(Baden-Württemberg) 주정부가 시행하는 희랍어 검정시험(Graecum)과 라틴어 검정시험(Grosses Latinum)에 합격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쳐준 개르트너 교수가 장학금을 마련해 줄 테니 고전문헌학으로 학위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하였으나, 한국에서의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1966년 귀국 후 서울대 독어교육과 전임강사로 임용되었지만,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교직에서 쫓겨났으며, 3년 2개월 동안 영어 생활을 겪고 이후 10년간 자격정지가 병과되었다. 자격정지기간 중 1972년 고전 문헌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첫 작품들로 플라톤의 『국가』 6~10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정치학』 5~8권을 상자했다.

1981년 단국대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2004년 퇴임을 앞두고는 여생을 서양고전 번역에 전념하기로 결심하면서 컴퓨터 사용을 배우고, 이후 모든 번역 작업을 컴퓨터로 진행했다. 퇴임 후 여든이 되는 나이까지 매일 자택의 작은 서재로 출근해 하루 7시간에서 6시간씩 서양고전 번역 작업에 매진하며 40여 종의 고전을 번역했다.

선생은 생애 동안 서양 고전 56종, 총 119편의 작품을 원전으로 번역하였다. 고전 번역가로 활동하며 그리스 문학과 로마 문학을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하며 고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원문의 깊이와 의미를 충실히 전달하면서도,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번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원전 번역으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로마의 축제들』, 아폴로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메난드로스 희극』, 『그리스 로마 에세이』,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플라톤의 『국가』 『법률』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시학』 등 다수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 『그리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천병희고전연구회 설립취지서

인문학의 불모지 속에서도 고전이 지닌 불멸의 가치는 시대를 넘어 우리 삶의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평생을 서양 고전 원전 번역에 헌신하시며 한국 인문학의 토대를 굳건히 다지신 故 천병희 교수님의 학문적 업적은 실로 지대하다 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남기신 소중한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후학들에게 남겨진 막중한 책무입니다. 이에 우리는 교수님의 학문적 뜻을 기리고, 서양 고전 문학의 번역과 연구를 지속 가능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구심점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설립하고자 하는 ‘천병희고전연구회’는 단순한 추모 모임을 넘어, 고전 번역 및 연구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후학 연구자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실질적인 기반이 될 것입니다.

본 연구회는 전문가와 대중이 함께하는 심도 있는 연구·독서 모임을 지원하여 고전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한편, 권위 있는 ‘천병희학술상’을 제정·운영하여 관련 학문 분야의 발전에 일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한국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밀알이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뜻을 모아 창립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2025년 1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