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역사저자: 헤로도토스
역자: 천병희
출판사: 도서출판 숲 (2009) 페이지: 994
“헤로도토스, 인간의 정신 활동에서 역사 서술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과 비(非)헬라스인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
헤로도토스(BC 480~425)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한 사람은 로마의 키케로(BC 106~43)이며 출전은 『법률론』(1권 1장 5절)이다. 키케로의 더할 나위 없는 ‘인증’에도 불구하고, 헤로도토스가 『역사』 서언에 밝힌 ‘망각’에 대한 우려는 그 자신의 책에도 적용되었다. 중세의 인문주의와 르네상스 시대에 라틴어 번역본으로 알려지기는 했으나, 20세기가 되도록 그는 믿지 못할 이야기꾼쯤으로 통했다. 근래에 와서야 그는 ‘마침내’ 투퀴디데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역사』의 폭넓은 역사관, 지리학적·인류학적·민속학적 분야에 대한 세심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던 지역들에 대한 발굴과 문헌 자료들이 발견되고 민속학과 지리학적 발견으로 어둠에 묻혀 있던 고대의 세계가 서서히 열리면서 더욱 빛나는 자료가 되었다. ‘들은 대로 전한다’는 실증적 방법을 재발견한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리스 로마의 역사 기술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로부터 역사라는 특수 분야가 탄생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언에서 그는 페르시아전쟁이 중심 주제라고 밝혔지만, 이 전쟁의 양상은 3부로 불리는 후반부에 압축되어 있을 뿐이다. 『역사』의 내용 대부분은 페르시아전쟁의 두 주역인 그리스와 페르시아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 대한 ‘여담(餘談) 형식의 지리학적·종교학적·민속학적·역사적 자료들’로 그가 직접 여행하고 탐문해서 얻은 정보와 관련자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헤로도토스는 ‘사실’보다는 허무맹랑한 얘기까지 역사라는 틀에 담는 사람쯤으로 여겨진 것이다. 더구나 그는 “나는 들은 대로 전할 의무는 있지만, 그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다.”(7권 152장, 4권 34장)라고 자신의 역사 기술 원칙을 밝혀 오랫동안 ‘거짓말쟁이’란 별명을 떨치지 못했다. 헤로도토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이 터진 해(기원전 431년)에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전쟁이 났을 때 헤로도토스는 53세였고 처음 몇 년 동안 전쟁을 체험한다. 『역사』는 424년에 이미 간행되었고, 그는 곧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는 왜 그리스의 두 세력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페르시아전쟁을 다룬 역사를 기록한 것일까? 제국 페르시아에 맞서 승리한 역사를 상기하자, 페르시아의 제국주의를 제국이 된 아테나가 반면교사로 삼자는 뜻은 아니었을까?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전쟁을 전제정치(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제국 페르시아)와 입헌정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그리스)의 충돌로 읽었다. 나아가 이민족을 노예 상태로 만드는 세력에 대항하는 자유를 향한 그리스의 도전을 환기하고자 했다. 지난 역사(페르시아전쟁)를 정리하여 당면한 조국의 현실(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벗어날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의 입장에서 『역사』를 썼지만 그리스를 일방적으로 찬양하지 않았다. 특히 책의 전반부는 보편적 문화사로, 헤로도토스는 동시대와 그 앞 시대에 세상에 알려져 있던 사실, 일화, 신화들을 종합하였다. 그는 산문으로 쓰고, 전설이 아닌 실제 사건들을 다루었지만 호메로스에 더 가까운 작가이다.
다음은 옮긴이 천병희 선생이 밝힌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일화가 많아요. 사소한 일화들은 신경을 너무 곤두세우지 않고 읽어도 되니까, 일단 재미있죠. 기원전 5세기에 집필된 인류 최초의 역사서로, 서아시아 및 이집트 역사는 헤로도토스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요. 이 외에 다른 사료가 없기 때문이죠.”
(페르시아 전쟁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해서는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참고)
목차
책 구입하기: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옮긴이 서문 최초의 역사가이자 최초의 이야기꾼, 헤로도토스
일러두기I
1-5장 서언.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의 불화의 발단: 이오, 에우로페, 메데이아, 헬레네의 납치
6-94장 뤼디아 왕 크로이소스 이야기
95-216장 퀴로스 이야기II
1장 캄뷔세스의 즉위와 아이귑토스 침공 결심
2-182장 아이귑토스III
1-38장 캄뷔세스의 치세
39-60장 사모스 이야기. 스파르테인들이 사모스를 공격한 이유
61-87장 캄뷔세스가 죽고 다레이오스가 즉위하다
88-116장 다레이오스의 치세
117-160 다레이오스의 통치IV
1-144장 스퀴티스와 다레이오스의 원정
145-205장 페르시아가 리뷔에에 원정군을 파견하다V
1-22장 페르시아인 메가바조스가 트라케와 마케도니아를 정복하다
23-126장 이오니아 반란VI
1-33장 이오니아 반란의 분쇄
34-42장 밀티아데스와 트라케의 케르소네소스
43-45장 마르도니오스가 헬라스 원정에 실패하다
46-131장 다티스와 아르타프레네스의 헬라스 원정
132-140장 밀티아데스의 에게 해 섬들 원정과 죽음VII
1-19장 다레이오스가 죽고 크세르크세스가 즉위하다. 헬라스 원정에 관한 논의
20-25장 원정 준비. 아토스 운하 건...설. 헬레스폰토스의 선교들
26-131장 크세르크세스가 텟살리아로 진격하다
132-178장 헬라스인들의 전쟁준비
179-183장 페르시아 함대가 테르메에서 마그네시아 반도로 진출하다
184-187장 당시 페르시아 육군과 해군의 규모
188-191장 페르시아 함대가 폭풍으로 큰 피해를 입다
192-201장 페르시아 육군이 테르모퓔라이까지 진출하다
202-239장 테르모퓔라이 전투.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스파르테 300인 결사대의 최후. 크세르크세스의 작전 토론VIII
1-20장 아르테미시온 해전
21-26장 테르모퓔라이에서 패한 헬라스 함대가 남쪽으로 철수하다
27-39장 페르시아군이 보이오티아 지방을 지나 델포이까지 진격하다가 격퇴되다
40-125장 살라미스 해전
126-135장 아르타바조스가 마르도니오스에게 돌아오다. 마르도니오스가 텟살리아에서 겨울을 나다
136장 마르도니오스가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를 사절로 보내 페르시아편이 되도록 아테나이인들을 설득하려 하다
137-139장 마케도니아 왕가의 역사
140-144장 아테나이인들이 마르도니오스의 제의를 거절하다IX
1-11장 마르도니오스가 텟살리아에서 앗티케로 남하하여 다시 동맹을 제의하다가 거절당하자 아테나이에 불을 지르다. 마침내 스파르테인들이 이스트모스로 진출하다
12-16장 마르도니오스가 아테나이에서 보이오티아로 철수하다
17-18장 페르시아 편에 가담한 포키스인들
19-24장 헬라스인들이 키타이론 산으로 진출하다. 페르시아 기병대장 마시스티오스의 죽음
25-89장 플라타이아이 전투
90-107장 뮈칼레 전투
108-113장 크세르크세스가 아우 마시스테스의 아내와 딸을 사랑하다
114-121장 아테나이인들이 세스토스를 함락하고 아르타윅테스를 책형에 처하다
122장 아르타윅테스의 선조와 다른 페르시아인들에게 준 퀴로스 대왕의 현명한 조언에 대한 회고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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